지금 내곁에....


  

새벽에 눈을 떴다.

갑자기 밀려오는 한기에 이불을 찾아 덮었다.

아이들 생각이 나 찾아보니 역시나 이불 없이 오늘도

맨 몸뚱어리들이다.

너무 몸이 차가워지진 않았나 여기 저기 몸을 만져보았다.

두 놈 다 몸이 많이 차갑진 않았다.

맘이 놓였다.


그리고 아직도 따뜻한 작은 놈의 발바닥을 만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나의  실존이다.

행복은 다른데 있지 않다. 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바로 지금에 있다.’

어느새 작은 놈의 아직 따뜻한 발바닥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되었다.


나는 늘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그 인생에게 어떤 대접을 해주어야하는지,

그럼으로써 나는 이 인생으로부터 어떤 해답을 얻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며 산다.


그리고 늘 내 자신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가야하지?’


매번 내리는 답은 다 다르다.

‘인생은 이런 것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가야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 이것만큼은 지키면서 말이지.’

이러 저러한 대답들.......

질문에 따라 다양한 대답들이 내 머릿속을 굴러다닌다.


하지만 맥락은 항상 같다.

이미 큰 줄기는 잡혀져 있지만 늘상 나는 이 질문을

머릿속에서  굴려보곤 한다.

굴리면 굴릴수록 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답들이

내 가슴을 울리고 종종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망각의 존재라 움직일 수없는

큰 맥락 속에서 찾은 답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마치 어려운 수학 공식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단단히 외워두었음에도 다양하게 변형된 응용문제를 풀 때는

능숙하게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도 실제 같아서

그 리얼리티에 머리가 마비되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 나는 너무도 많은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살아오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내가 가진 기준이란 것이 비록 절대 자비일 순 없겠지만,

이 세상의 또 다른 측면인 악의 입장에 대해선 배척하고

증오했던 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진정 나 자신을 100%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사실은 나의 반쪽만을 사랑한 것이며 여전히 나의 절반은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론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이것과 저것, 즉 음과 양으로써 한 몸뚱이가 되어 구성되어 있다.

이것만을 취하고 저것은 배척한다고 배척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것만을 취하고 저것은 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존재하기를 거부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도가에서 말하는 우주의 근원인 무극조차도 이것과 저것이

언젠가는 발현되어질 무한한 가능성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몇 년 전 ‘나의 눈’이라는 책을 아주 인상 깊게 본적이 있다.

저자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여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며,

일반인들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더 높은 차원으로의

영적 개발을 돕는 일을 하고 계신분이다.

이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참 존재라고 불리는

일종의 깨달음의 상태를 경험하신 분이다.


공의 상태나 지복의 순간을 수없이 경험한 이런 분도

일반인들이 상상 못할 노력을 해 오신 분이었다.

그의 노력을 잠깐 옮기면 이렇다.


“나는 우선 참 존재의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그다음에는 누구든지 예외 없이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하려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매 순간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 욕구, 행위를 모조리 <신>에게

내맡기자 마음은 점차 고요해졌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리고 엄격하게 초점을 한 군데 모으고 단 한순간도

명상하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썼다......”


참으로 한 치의 어긋남 없는 부단한 각고의 노력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늘 상 모든 종교의 성자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깨달음의 비밀을 마음과 머릿속에 담고 그 말씀을

염주 알 굴리듯이 곱씹으며 살아가지만 이러 저러한 사건들로

치고 들어오는 현실의 가혹한 리얼리티 앞에선

K.O패하기 일쑤였다.


우리 인간들 앞에 널브러져 있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텅비어가는 은행 잔고, 늘어가는 빚더미, 병치레 잦은 아이들,

책임지지 않는 배우자, 형제들 간의 불화, 이웃 간의 반목,

반 토막 난 주식, 물거품 되어버린 땅 투자,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사주팔자,

게다가 세상에선 이런 저런 전염병과 재해로 인간들의 목숨이

말기 암 환자 머리 뽑혀나가듯 뭉텅 뭉텅 사라져간다.


신종플루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게 사실이다.

에이즈, 조류독감, 광우병, 신종플루 등

새로운 병들이 출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 식구들은 걸리지 않을 것인지

엄청난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게 이런 병들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해줄 것인지를 찾아 헤매게 된다.

뾰족한 답도 없으면서 머리를 굴리고 속을 태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문득 하루하루를 연명 하는 게 내 삶의 목표인 냥 사는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은 나 몰라라 나와 내 가족만 살아보겠다고

용을 쓰는 내가 어쩜 그리 속물로 느껴지는 지

참담하기만 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데.......

그제서야 내 마음 속 영원한 화두를 슬며시 꺼내든다.

‘내게 주어진  이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하는가?

이생에서 만나지는 모든 인연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하는가?

가장 강한 집착의 대상인 자식, 돈, 명예 등등에 대해

어떤 마음을 견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내게 던진다.

그럴 때마다 여러 종교의 성자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깨달음의 내용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진다.


현실에서의 가혹한 리얼리티가 나를 엄습해 올 땐

각고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불가의 여러 조사님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부단하고 흔들림 없는

노력들을 생각하며 흔들리려하는 내 마음과 혼돈에 빠지려하는

내 정신의 날을 세우려  노력을 놓지 않고 있다.


‘간절히 청하옵나니 언제나 나의 맘속엔 한줄기
서늘한 지혜의 바람이 불기를 원하옵니다.’



어릴 적 나는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딱히 심하게 이상할 정도는 아닌 성 싶어서

나와 비슷한 버릇을 가진 이도 더러는 있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께 심하게 혼나고 매를 맞았다든지,

친구들과 다퉜다든지, 시험 성적이 너무도 나빠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든지 하는 등등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때는 너무도 괴롭고 슬퍼서 ‘엉엉’하고 큰소리로

울었던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중간에 어김없이 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졌고,

나는 그 모습을 거울로 확인을 하곤 했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은 참으로

이 세상 최고의 추녀였다.

그러면 나는‘이건 아니지’하며 순식간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얼굴 표정은 순식간에 추녀에서 해맑은 소녀로 돌아왔다.

그러는 중에 심각했던 상황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상황처럼 내게 느껴지게 되고, 급작스런 상황 돌변에

방금 전까지 ‘내가 죽을 만큼 괴로웠던 거 맞아?’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가 되었다.

그리곤 ‘정말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황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렇게 환한 웃음 한 방으로 물러갈 슬픔이라면

사실은 진정 슬픈 상황은 아니란 얘기가 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모호한 것이로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날의 슬픔을 마감 지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이 들이대는 기준과 잣대란 것은

그 한계가 참으로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 기준과 잣대를 쓰는 사람들조차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늘 상대적으로 변하는 존재들로 절대적 가치와 이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런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기준과 가치들로 선과 악을 가르며,

악은 제거하고 선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자는 말은

내 눈은 예쁘게 생겼으니 놔두고 못생긴 코만

없애버리자는 말과도 같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악은 원래의 우리 모습 중 일부분이니 놔두자는 건가?

선을 추구하며 그 선이 이 세상에서 실현 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오신 모든 분들은 결국 헛수고를 한 것이란 말인가?


악의 방치와 선의 무력함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본래의 모습을 똑바로 보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얘기다.

나의 못난 부분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다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다! 아니다! 며 눈감지 말고 제대로 보고 판단하자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심각하다.

그 심각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집착이다.

삶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살고 싶은 열망 때문에 갖가지 나돌고 있는

질병들이 무섭지 않은가?

사람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들이 아플까 죽을까 겁나지 않은가?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떠나려는 돈이 원망스럽고

가난이 두렵지 않은가?


이런 마음들에서 놓여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은커녕

단 한 순간의 행복도 존재할 수가 없다.

이제라도 우리 지금의 관점에서 한발만 더 물러나보자.

두발 세발 물러나도 좋다.

좀 더 멀리서 큰 그림으로 우리 인생을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우리를 그 자리에 머물러서

옴짝 달싹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현실의 가혹한, 혹은 달콤한 리얼리티가

우리가 잠시 고개를 들어  먼 산의 푸르름이라도

볼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지금의 우리에겐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긍정의 전환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못나고 더러운 면까지도 안을 수 있는

자비와 사랑의 전환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뿌리는 자비와 사랑과 긍정의 씨앗이 나중에는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의 전환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에 눈길을 주고 내 주위의 익숙한 것들과의 교감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각의 전환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우리에게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 새벽녘 그대 문득  올라오는 한기에 눈이 떠진다면,

그대 곁 아이들의 아직 따스한 발바닥을 가슴에 품어보라.

그리고 그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며 그대의 생명과

아이들의 생명이 함께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느껴보라.

불완전한 모습 이대로 작지만 오롯한 그대만의 행복을 느껴보라.


그 순간 온 세상의 악과 추악함마저도 품어내야 하는 삶의 명분과

그로인해 얻어질 우리의 희망이 그 곳에 있을지니.......






by 크리스탈 | 2009/09/15 12:41 | 迷悟之間 | 트랙백 | 덧글(5)

가시어미 한아름과 모항의 절묘한 어우러짐!^^

 

올해는 여러 가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하야
휴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고 있었다.


그런데 모항해수욕장에서
한아름 품종평가회와
시식행사가
1박2일
일정으로 있을 예정이니
배 서포터즈들이
참석해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한아름은 여름에 수확되는 첫 배로서 신고에 추황을 교배하여 만든

배 품종으로 국내 육성 과일이다.


아직은 재배농가가 흔치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맛 볼 수 있는 배는 아니다.

그 한아름을 일반인들에게 홍보하고 맛을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농진청 산하기관인 나주 배 시험장에서 주관하고 배 서포터즈들이 지원하는
행사인 것이다.

그러니만큼 열심히 홍보도하고 회원들 간의 단합과 관민(?)간의 융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더불어 포기해야했던 휴가를 나름 휴가답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첫날 있었던 한아름
평가회는 무사히
잘 끝났다.


모항 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음날 있을
홍보시식회를 위해
스탠바이에 들어갔다.




서포터즈들과 그의 가족들 간에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돈독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 배를 사랑하는 사람들 >의 존속은 더욱 긴밀하게
더욱 오래도록 유지되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를 매개로 만났지만 이제는 육아와  청소년 교육에서부터 정치 사회 문화까지도
그 정서와 정보를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관계로 까지 발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동안 학교와 학원을 돌며 풀지 못했던 동심을 맘껏 풀 수 있었고,

자동차와 아파트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어린 잎 누렇게 뜬 화초처럼
시들거렸던 아이들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바다와 모래사장에서 몸속의 독기까지 빼내버린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내 돈 들여 짜여진 계획 하에 간 휴가는 아니었지만,

너무도 맛있는 배를 먹으며, 이런 맛있는 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함께 먹어요~’하고 권할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았고,

너무도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면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번 휴가 아닌 휴가는 배, 사람, 자연이 화두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시원 달콤한 맛과 더불어 건강까지도 챙길 수 있게 해주는
우리 <가시어미 한아름> 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도 되고 사랑도 되고 우정도 되는,
그리고 밥도 되고 술도 되고 약도 되는 그런 인간세상을 꿈꾼다면
내가 너무 욕심쟁이인 것일까?

by 크리스탈 | 2009/08/27 16:46 | 배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민주주의와 함께 한 이 시대의 지도자

 

 

마음으로 의지하던 한 분이 가셨다.


내가 몸 담고 사는 이 시대  민주주의 산증인이셨고


그것을 지켜내시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열혈투사셨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처럼 급작스레 수를 다 하시지도 못하고


가신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지만


이제 남겨진 우리들만의 힘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짐을 어쩔 수가 없다.



그 모진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꺽지 않으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뜻을 이어


상생과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부디 이 나라의 번영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살다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좋은 곳에서 편히 잠드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by 크리스탈 | 2009/08/19 15:28 | 세상을 이야기하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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